안녕하세요. 블루페이퍼 독자여러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광개토대왕의 해양활동에 대해 한 번 더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광개토대왕이 공격했던 해상요충지,
‘관미성’을 언급했었죠.
백제가 광개토대왕에게 이 성을 빼앗기고 나서,
3년 만에 수도 서울을 공격당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바로 이 사건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목을 보면, 광개토대왕의 서울공격,
1600년전의 ‘인천상륙작전’ 이네요.
무엇인가 감이 잡히셨나요?
맞습니다.
광개토대왕은 396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하면서,
수군(水軍)을 동원한 상륙작전을 펼쳤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림 : 고구려 군의 상륙장면 추정>
(*출처 : MBC드라마 태왕사신기)
<그림 :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나왔던 배용준(광개토대왕 역)>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위의 그림은 MBC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나왔던 그래픽 장면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상륙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진짜 광개토대왕이 배용준처럼 잘생기지는 않았겠죠? ^^;;
이와 관련한 사료는 “광개토왕릉비문”에 나와있는데요.
요약해서 살펴보자면...
396년 왕이 친히 수군(水軍)을 이끌고 백잔국(百殘國:백제)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각미성(관미성), 아단성(아차산성), 미추성(인천), (중략) …
등 58개 성을 함락시켰는데, 백잔이 복종하지 않고 감히 나와 싸우니
왕이 크게 노하여 아리수(한강)를 건너 수도를 포위하였다.
이에 백잔의 왕이 항복하였다.
<그림 : 광개토대왕비(중국 집안)>
(*필자 촬영)
사료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수군을 이끌고
관미성과 인천으로 쳐들어갔습니다.
(*다만, 광개토왕릉비문에는 ‘수군’의 ‘水’ 글자가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으므로,
‘수군’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를 인용하면서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이 외에, 남양만 일대로도 함께 쳐들어갔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관미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 했었죠?
강화도 서북쪽의 교동도나 파주의 오두산성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한강 하구지역이죠.
결론적으로 광개토대왕의 수군은 인천과 한강하구,
남양만까지 모두 3갈래로 군사를 나누어 쳐들어간 셈이죠.
<그림 : 396년 고구려 공격로(추정)>
(*출처 : KBS 역사스페셜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
<그림 : 396년 고구려 한성 공격로(추정)>
(*출처 : KBS 역사스페셜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
<그림 : 고구려의 배>
(*출처 : KBS 역사스페셜 <고구려의 남진 프로젝트>)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미추성(인천)입니다.
광개토대왕이 396년 함락시켰다는 58개성 중에는 미추성이 있는데요.
이곳은 지금의 인천지역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백제의 건국설화에 보면,
비류와 온조 형제가 고구려를 떠나 백제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 때, 형인 비류가 머물렀던 곳이 미추홀이라고 나오는데요.
이곳이 바로 인천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추성의 이름이 바로 미추홀과 유사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대체로 미추성을 인천으로 추정하는 것이지요.
<그림 : 문학산성 (미추성 추정)>
(*출처 : KBS 역사스페셜 <고구려, 천하의 중심을 선포하다>)
지난 포스팅의 가장 마지막에 소개했던 구절, 기억나시나요?
“재미있게도, 역사 속에서 중요한 전투는 시대를 불문하고 비슷한 지역에서 벌어진다.”
오늘 포스팅 내용도 이 구절과 딱 들어맞는군요.
왜냐하면 1950년 9월 15일,
한국군과 미국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은
대규모 병력을 인천에 상륙시키면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을 마련하기 때문이죠.
<그림 : 인천앞바다로 향하는 상륙정>
(*출처 : 두산백과)
<그림 :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사령관>
(*출처 : 두산백과)
그 당시에도,
인천에 상륙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서울 중심부로
빠르게 진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바로 ‘속공(速攻)’입니다. 상대의 허를 찌를 수도 있구요.
광개토대왕이 1600년전에 사용했던 전술도 바로 이러한 ‘속공’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먼저 관미성을 함락해서 해양요충지를 확보한 후,
한강하구와 인천, 남양만으로 일제히 군사를 보내서 백제의 허를 찔렀던 것이지요.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도 먼저 인천 앞바다의 전략요충지를 수복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상륙작전 성공에 크게 공헌했던 일이 있습니다.
1950년 8월 18일,
20일 대한민국 해군의 육전대원들이 덕적도와 영흥도를 수복하고,
주변지역 정보를 수집하여 제공하였던 것이지요.
<그림 : 수복직후 해군 육전대원들>
(*출처 : 해군 공식홈페이지)
오늘의 포스팅을 정리해보면,
1600년전의 광개토대왕은 관미성을 먼저 점령해서,
서해안 해양요충지를 확보한 뒤에,
인천 등지에 상륙작전을 감행, 백제의 허를 찔렀습니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도 북한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고,
그에 앞서 해군 육전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덕적도와 영흥도를 수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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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서북쪽의 교동도나 파주의 오두산성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한강 하구지역이죠.
줄이자, 이면지를 사용하자 그리고 트리플래닛을 이용해 나무를 심자 등 다양한 실천사항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396년 왕이 친히 수군(水軍)을 이끌고 백잔국(百殘國:백제)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각미성(관미성), 아단성(아차산성), 미추성(인천), (중략) …
래닛을 이용해 나무를
지난 시간에 광개토대왕이 공격했던 해상요충지,
제목을 보면, 광개토대왕의 서울
동도나 파주의 오두산성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한강 하구지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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