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11일 오전 11시, 해방병단이 창설되었다. 


               해군은 신사다워야 한다며 선비 사(士)자가 두 번 겹치는 날로 특별히 고른 

것이었다. 손원일과 70여명의 대원들은 우리 바다는 우리 손으로 지키자며 뜻을 모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청년들에겐 말 그대로 맨주먹 하나 뿐,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삼일 후엔 일제의 군항이던 진해로 내려가 시무식 했지만, 시설은 파괴

되어 있었고 물자도 모조리 도난 당한 뒤였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지 불과 서너달. 

지원금을 줄 정부도 없고 당장 먹을 끼니도, 추위를 피해 몸을 누일 변변한 건물도 

없었다. 이처럼 해군의 창군 은 3군 중 가장 앞선 행보였지만 그만큼 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최소한의 잠자리와 끼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대원이 속출했다. 하룻밤 지나면 열댓 명씩 돌아가겠다며 항의했고, 

급기야는 손원일을 데려오라며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이런 대원들 앞에 선 손원일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연하게 돌아간다는 사람들에겐 차비를 

주겠노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는 대원들에게 “이런 고난은 계속될 것이니 

당분간 독립군과 같은 희생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날 손원일의 연설에도 끝내 33명은 돌아갔지만 그의 진정성 있는 설득에 

감복한 37명의 대원은 남아 해군의 기반을 닦는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해군은 오늘 날 총병력 6만여명, 함정 160여척을 보유한 대양해군으로 자라난다. 


세계 5번째로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고 아덴만에서 작전을 수행하게 된 우리 해군은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배고픔과 먼저 싸워야만 했었다.


 



             이런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해군의 ‘성공 스토리’는 든든한 러닝메이트

들도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특히 6.25전쟁 이후 한국 해군 전력 증강에는 우방국인 

미국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 중에서도 6.25전쟁 직후 美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알레이 버크 제독은 한국 해군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충무함(DD-91)등을 도입, 한국 해군이 

구축함 시대를 열 수 있도록 공헌한 인물이다.

 


               버크 제독은 퇴임 이후에도 한국 해군의 구축함 인수에 힘을 보탠다. 

1967년 10월, 美 의회에서 한국 해군에 대한 구축함 대여 안건이 부결되자 예비역의 

신분임에도 지원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한국 해군에서는 구축함 추가 인수를 확정적

으로 생각해 인수요원까지 뽑혀 있었다. 버크 제독이 지원하지 않는다면 美 의회 

회기가 끝나버려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당시 교섭을 담당했던 

박찬극 대령은 회기가 20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알레이 버크 

제독을 찾아간다. 6.25전쟁 때 그의 배에서 통역장교로 근무했을 때 친분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버크 제독도 지인들에게 박 대령을 '나의 한국인 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둘은 막역한 사이였다.


                이런 인연 때문에 버크 제독은 이례적으로 사비를 털어 의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한국 해군이 겪는 어려움을 적극 알리고자 했다. 박찬극 대령이 미 상원군사

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브리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한 것도 버크 제독의 노력 덕분

이었다. 결국 부결됐던 구축함 대여안은 그해 11월 의회를 통과된다. 이렇게 부결된 

안이 한 달 만에 재심되어 통과되었다는 것은 버크 제독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서울함(DD-92)과 부산함(DD-93)은 이처럼 극적인 과정으로 인수, 

한국 해군의 중요 전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알레이 버크 제독은 참모총장 재임 시절부터 한국 

해군의 전력 증강에 큰 도움을 줬다. 더욱이 한국통이었던 그가 참모총장을 3번 연임

했기 때문에 우리 해군이 안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버크 

제독은 취임 이듬해인 1955년부터 수송함·소해함 등 지원함뿐만 아니라 호위함·상륙

로켓함 등의 전투함을 인도하기 시작한다. 5년간 인도된 함정은 총 35척으로, 3인치 

포만 있던 우리 해군이 5인치 도입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소해, 호송, 기뢰

부설, 대함·대잠작전 등 다양한 작전을 입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해군사관학교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육군은 비교적 빨리 

육성할 수 있지만, 해군이 제대로된 틀을 갖추려면 100년은 족히 걸린다는 지론 때문

이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았던 것이다. 그가 1950년 해사를 방문했을 때, 

해사에 도서관이라곤 영세한 규모의 도서실 뿐이었다. 버크 제독은 이를 보고 크게 

안타까워하며 팔을 걷어 올리고 나선다. 美 해사 월간지에 한국으로 책을 보내줄 

것을 호소하는 기고문을 실은 것이다. 이때 해사가 기증받은 책은 대략 2만여 권. 

해방 이후 십여년간 서울대 도서관이 확보한 장서가 약 3만여 권임을 감안할 때, 

당시 배움에 목말라 있던 생도들에게는 단비 같은 책이었을 것이다. 

 


               그의 남다른 해사 사랑은 재임 기간 중에도 이어졌다. 1957년 해군사관

학교를 시찰했으며, 퇴임 후에도 두 차례 해사를 더 방문했다. 특히 마지막 방문인 

1971년에는 일정을 일부러 변경해가면서까지 해군사관학교에 들러 생도들을 격려

했다. 박찬극 대령은 “1995년에 마지막으로 버크 제독을 만났을 때, 94세의 연세에도 

해사의 발전상에 크게 기뻐하셨던 표정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버크 제독은 사상 최초로 해군참모총장을 3회 연임했으며, 공군 독립 이후 

해군 역할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를 잘 이끌어 현대 美 해군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1년에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생존 인물임에도 함정 이름에 쓰인다. 


이것 또한 사상 최초였다. 



               현재 미 해군 구축함의 주력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은 총 63대가 운용 

중에 있다. ‘신의 방패’라고 부르는 이지스 구축함으로, 세계 2위 보유국인 일본의 

10배가 넘는 숫자다. 이처럼 알레이 버크 제독의 이름은 구축함의 대명사로 영원히 

남았다. 우리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3척도 이 배의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알레이 버크 제독과의 묘한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군사관학교는 오늘, 이런 노력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알레이 버크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 그가 살아생전 4번이나 방문했던 교정을 41년 만에 다시 찾는 셈이다. 

버크 제독은 해군을 사랑했고, 선원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그는 자신의 모교인 美해사

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사후에도 그곳에 안장되기를 원했다. 


그의 묘비에는 SAILOR라는 말만 적혀 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다. 정계에 진출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SAILOR로 만족한다.”고 짧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가 해사 생도들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은 이런 그의 

올곧은 '신사'로서의 모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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